설악의 유월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간밤, 오색에서 잠을 청하는데, 차가 흔들릴 정도였다.
한계령으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여섯 시,
높은 하늘에는 구름이 흐르고, 산봉우리는 거센 바람에도 안개 옷을 입었다.
당진에서 오신 분은 첫새벽에 멀리서 왔는데, 곰탕이라며 기운 빠져하셨다.
서북능선에 올라서서 내설악을 내려다보고 싶다 하셨는데.
일기예보에는 가끔 구름이라 했으니, 헛걸음은 아닐 것이라 위로드렸다.
人生到處 多上手
ep 1
한계령 시멘트 계단을 밟아 오르는 이가 있었다.
주차장에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배웅하는 여성 한 분이 계셨고...
옷차림은 등산복 같지도 않았으며, 등에 멘 조그마한 가방과,
점심을 담았는지 종이 가방 하나가 덜렁거리며 매달려 있다.
한눈에 보아도 설악산을 등산하는 분 같지는 않고, 연세가 있어 보이니, "국립공원 자원봉사하시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의 걸음이 느리니, 곧 뒤따라 가게 되었다. 인사를 여쭈니
시드니에서 오셨고, 올해 78세가 되셨단다.
설악산을 오려고 도봉산 포대능선을 예행 삼아 걸었다고 하셨는데,
하지만, 얼마 못 가 힘든지 쉬신다. 설악이니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오르시라 하고, 길을 앞섰다.
한계령 삼거리까지는 두어 시간 걸리니, 능선에 서기만 해도 설악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어, 그에 만족하시리라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끝청을 앞두고 쉬는데, 그분이 웃으면서 지나가신다. 헐~
오색으로 가신다 했는데, 끝까지 그분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ep 2
출발해서 시드니에서 오신 아저씨를 뒤로 하고 한 시간쯤 지나서 아침을 먹는다.
그 시각에 당진 아저씨가 날씨 푸념하며 지나가고 난 후,
버프를 모자 삼아 머리에 쓰신 분이 잠시 쉬어가신다. 식사를 권하니 아침 먹고 출발했다고 사양하신다.
머리가 희끗하니, 환갑 나이는 분명 넘어섰는 것 같은데 지팡이도 없이 헐렁한 가방 하나만으로 차림이 단출하다.
운동을 하시는지 신체는 건강해 보였다. **에서 건설업을 하신다고 했다.
잠시 이야기 나누다가 먼저 올라가셨는데, 걸음걸이가 힘이 있다.
서북능선에 올라서서 이 꽃 저 꽃 간섭하며 길을 걷는데, 아니?
버프 아저씨가 이제야 우리를 뒤따라오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세상에 그 시간에 귀때기청봉을 다녀오셨다 하지 않는가? 헐헐~
그렇게 우리를 다시 앞서 가시고,
끝청을 앞두고 쉼을 하는데, 다시 버프아저씨가 우리를 뒤따라 오는 게 아닌가?
이게 뭔 일?
이야기를 들어보니 들를 곳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인데,
때가 되면 버섯이나 산삼 산행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과거 150년 된 산삼을 캐었는데,
그 삼을 팔지는 못하고, 이웃에게 주었단다.
(그 삼을 먹은 이는 사흘밤낮을 혼절해 있었다는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그분도 오색으로 내려가신다 했는데, 이 후로 그분의 그림자를 보지 못한 건 당연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시드니 아저씨도 그때 지나가셨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으니 웃으면서 다시 인사를 건넸다.
ep 3
대청을 오르는데, 바람세기는 절정에 달한 듯,.
훅훅 밀어붙이는 바람에 몸이 휘청거린다.
주중이라 대청봉 정상인증 담는 분이 많지 않다.
여기를 오를 때마다 인증 대기 줄이 길어 지나치기만 했는데, 오늘은 드디어 인증사진을 남기게 되었다.
바람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내려서려는데, 한 분이 막 도착을 했다. 분명 혼자 셀카정도만 찍을 수밖에 없겠다 싶어
"사진 담아드릴까요" 했더니 고맙다 하셨다.
자기는 대청봉에 사진 담아 줄 사람 없으며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단다.
손에 든 미니 현수막을 펼쳐 드는데, 칠순을 자축하는 문구였다.
축하한다고 하니 기분 좋게 웃으셨다.
브이로그 캠코더도 가지고 오셨는데, 나는 그걸로 동영상을 담아드리고,
아내는 그분의 폰으로 인증사진 담기에 열중했다.
그분은 오늘 설악산 대종주를 하는 중이라 하셨다.
(설악산 대종주_남교리~서북주능선~대청봉~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 42km)
새벽 1시에 남교리를 출발해서 지금 대청봉인데, 다시 공룡능선을 타신다니 헐 헐 헐~~~
3 peaks challeng(한라산 정상에서~지리산~설악산을 24시간 내 오르기)를 하시고,
마지막 대청봉에서는 정상석을 껴안고 엉엉 우셨단다. 22시간으로 그때까지 비공식 최단시간이었다고...
설악은 오늘도 말없이 그를 찾는 모든 것에 넓은 등을 내어주고 있다.
바람이 지나고, 눈비가 적셔도 풀과 나무 등 온갖 생명체를 안아준다.
오색의 가파른 내리막길에 힘들어하는 3명의 외국인 학생에게 물 한 병을 내어 주었다.
감사하다고 우리말로 인사를 건넨다.
나도 설악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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