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같은 겨울비가 내렸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산허리까지 뿌옇게 내려앉았다.
비 맞은 소나무 줄기는 검고, 솔잎에는 아직도 이슬 같은 물방울이 맺혀있다.
물방울도 그렇고, 안개 낀 것 같은 날씨는
바람 한 점 없다는 것.
땀이 밴다.
산길을 걷는데,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서너 번 미끄러짐이 있었다.
나만 부주의 한 것이 아니었다. 선행자의 미끄러짐도 여러 번 보인다.
나처럼 살짝 당황했을 게 생각나고, 그래서인지 잠시, 뜻 모를 실소가 베인다.
뒤-뚱.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옅은 동지애 같은.
비 조금 왔다고, 말랐던 들솔이끼는 금세 푸르러졌고,
생강나무 꽃눈은 밤사이 크게 부풀었다.
봄이야 오지 말래도 오는 것이지만,
올봄은 느리게, 느리게 왔으면...
하루가 일 년같이, 한 달이 10년 같이 느리게 왔으면 좋겠다.
의사는 무슨 권리로 사람의 인생을 시한부로 점 찍어버리는가.
남쪽에서 친구가 갑자기 아프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대한이 지났으니 입춘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셈 할 수 있겠는데,
우리 앞일은 셈이 되질 않는다.
2021/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