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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숲, 나들이

남쪽을 다녀오다.

by 寂霞 2023. 4. 10.

경남(남해 앵강만의 아침) 2023/04/09

 

나는 기차나 버스를 예약할 때 내측(통로 쪽)을 선호한다.

그전에는 바깥 경치도 볼 겸, 창 쪽이 좋았으나 언제부터인지 내측이 편하다는 느낌이다.

내가 조금 다른 성향인가? 다른 사람은 대체로 창 쪽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러니, 창 쪽은 빈자리가 거의 없어 나는 늘 동행인이 있게 된다. 

 

ep.1 나이 듦과 젊음

일곱 시 십삼분 부산행 무궁화 기차.

아침 햇살이 눈 부셔서 커튼을 치니,

창가에 앉으신 여 승객께서 자신은 아침 햇살이 좋으시다고 하신다.

남편과 같이 늘 아침 햇볕을 쬔다고 하셨다.

다시 커튼을 걷어 드렸다.

손과 얼굴, 목에는 인생 주름이 많으시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셔서 평소, 예의가 몸에 배신 분이라는 느낌이다.

서로 오가는 대화는 삶,

부산으로 친정어머님을 뵈러 가신다고 말 문은 여신 후, 서로 간 대화는 대전까지 이어졌다.

여든이 가까워 지시는 연세.

벙거지를 쓰셨지만, 귀밑으로 흩어진 윤기 없는 흰 머리카락, 오래된 신발과 손잡이가 접어지지도 않는, 낡은 여행 가방,

그러하셨다. 세월을 거느리고 계셨다.

 

잎몸의 축에 날개가 있는 '봉의꼬리' 경남(남해 신전리) 2023/04/09

나는 대전에서 ktx를 갈아타야 한다.

부산에서 친구의 아들 결혼식이 이른 시간이니, 부산행이긴 하나 무궁화 기차로는 제시간에 댈 수는 없다.

환승.

예매할 때 창 쪽 자리가 빈자리였지만, 역시 내 자리는 통로 쪽이다.

자리를 찾으니, 창쪽에 젊은 아가씨가 앉아 있다.

이런 경우 나는 조금 미안해진다.

내 눈에는 - 생면부지일지라도 - 젊은이는 젊은이끼리 앉아 가는 게 좋아 보였다.

나도 나이가 적지 않으니, 무궁화 옆자리 손님처럼 예의가 있어야 한다.

혹시, 전화나 문자가 올지 모르니, 오른쪽에 있던 핸드폰과 손수건을 미리 왼쪽으로 옮겨 놓는다.

오른쪽을 뒤적거리다 보면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여성이라면 더욱더.

 

수리딸기 경남(남해 신전리) 2023/04/09

대화는 물론 없다.

들어오는 메시지, 카톡 몇 번 들여다봤더니, 금세 배터리가 닳는다. 그래서 충전기를 가지고 다니기도 하는데,

아, 이럴 때 창 쪽 자리가 필요한 거였다. 이건 예상 밖이라.

하지만, 충전 좀 하겠다고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얼굴 화장을 열심히 고치고 있는데 방해가 될 것이다.

고치고 또 고치고 손거울 들고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 이리 넘기고 저리 넘기고,

대전에서 부산까지 줄곧.

아, 젊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런 모습에 무궁화 속 그 할머니가 오버랩 되고,

더불어, 같은 부산행이지만, 무궁화와 ktx의 이미지가 겹쳐 떠 오른다.

 

아마도 ktx는 무궁화를 거리상 한 참 전에 추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 만큼이나 무거운 무궁화도 역시 부산을 향해 가고 있겠지.

 

포엽에 톱니가 있는 '등대풀' 경남(남해 신전) 2023/04/09

 

ep.2 삶이란.

부산에서 친구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고, 동창 모임에 가는 길.

두 가지 일이 겹치니, 이동 거리도 길고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약간 피곤하다.

휴대전화에서는 동창회에 참석하는 이들이 서로 반가운 대화를 하느라 단톡방이 바쁘다.

코로나로 인해 서로 본 지 오래되었으니, 반갑기도 하고,

모처럼 사람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어디에서 출발한다느니, 나도 몇 시에 출발했는데, 지금 어디쯤 가고 있다는 둥.

폰 안에는 그런 즐거움이 한가득이다.

 

그런 단톡방에 친구 모친상 부고가 올라온다.

금일 새벽 *시 **모친 별세, 발인은 ........

갑자기 단톡방에는 정적이 흐른다.

喜와 悲

 

삶이란!

 

조개나물속 '금창초' 경남(남해 신전리) 2023/04/09

 

개울의 유채 202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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