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사람들은 왜 이다지 퉁명스러워졌는지,
산길에서 인사라도 할라치면, 무반응.
좁은 길, 비켜 서 준 줄 뻔히 알면서도 무심코 지나가는 이,
비록 길이 가팔라 숨이 차기도 하겠지만, 양보해 준 이에게 인사 한 마디 하지 못할 정도인가.
그래도 말 없음은 차라리 낫다.
"꽃이 있습디까?"
이 말은 꽃자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끼리 하는 인사말인데,
정색을 한 얼굴로,
"꽃이 없다 해도 어차피 올라갈 거면서"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원, 민망스러워서
꽃을 담고 있는 어떤 이는 뒤에 도착한 사람 들으라는 듯이
"난 누가 옆에 있는 게 싫은 데" 이런다.
허~참, 들은귀를 의심할 정도이다.
이런 말 함부로 내뱉는 부류는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는가.
땅바닥에 엎디어 쳐들고 있는 궁디를 주 차삐리고 싶다.
예끼.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인간이 모여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이라 하는 거다.
근년 한국 사회가 외국인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 데는 비록 BTS 효과뿐만이 아니다.
그들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예(禮)와 정(情)이 우리 문화에는 있기 때문인데,
그 귀중한 무형의 자산을 스스로 폐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내린 비로 물줄기가 시원해진 적목용소폭포

용이 있다면 이런 모습인가?


무주채 폭포로 가는 길은 정비를 잘해놓았다.
꽃자리 찾아보겠다고 다녀간 지가 몇 해 되었다.
그전에는 좁고 상당히 거친 길이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이 많은 걸 보니 모두 꽃자리 찾아가는 듯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아래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일명 '치마난초', 아내가 실물을 꼭 한 번 보고 싶다 해서 나선 길이다.
난, 오늘을 끝으로 더는 찾지 않을 듯하다. 사람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모습을 이런 자리에서는 꼭 보게 된다.

깊은 골에서 이는 바람이 시원하다.
수량이 많으니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우렁차다.


이 모습을 보고 잠시 눈을 감으면,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 든다.
비록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지만, 분명 이랬을 것 같다.









신록이 짙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가평의 산은 아직 연둣빛이 남아있다.
높은 산에 드니, 거꾸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오이순을 한 주먹 가져왔는데, 오이향이 얼마나 강한 지,
그전에 취나물도 그랬다.

벌써 오래되었다고 봐야 하나,
어느 블로거에서 야생화에 헌신하신 분을 언급하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그 분의 글을 여러 번 보았는데, 국망봉에 광릉요강꽃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찾아다녔다는 글이 있었다. 결국, 찾지는 못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글을 읽고, 몇 해 전 나도 그렇게 찾아 나선 적이 있었다.
무주채 폭포 상단에서 시작했는데, 주로 등산로의 왼쪽만 집중했었다. 결론은 나도 실패. 그때 한 줌 쥔 취나물이 그렇게 향이 좋았었다.
나중에 꽃자리가 소문이 났는데, 알고 보니 폭포 상단에서 개울을 건너 멀지 않은 골짜기에 있었다.
그런 분은 신종을 찾을 줄 아는 전문적인 지식인이었지만, 나는 그런 류의 열정이라는 것은 눈곱만큼도 없고, 오로지 눈요기만 하고 다니니, 취미라고는 하지만, 꽃을 보러 다니는 것이 너무 비생산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아직도 못 본 꽃은 보고 싶으니, 이런 맘을 일러 뭐라고 불러야 하나.
올해는 모처럼 설악산을 오르고 싶은데, 무릎이 허락을 해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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