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온다는 기별이야 진즉에 알려왔지만,
하매나 올까 이리저리 둘러보았는데
어느새 허리춤에 매달려 있었다.
머릿수건을 적시는 땀도 줄어들었고,
등허리도 덜 축축하다.
오늘따라 바람조차 높은 곳에서 불어내리니
이제 바람막이 웃옷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겠다.
기억은 되돌리는 힘이 있다.
생각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투구꽃을 본 적이 있는 산자락을 오르니 그는 간 곳 없고,
아직은 푸른 천남성 열매자루며, 사그라드는 은꿩의다리, 열매 매단 속단 등이 눈에 띈다.
믿음의 방편으로 시각에만 의존하는 것은 편협된 생각이다.
의왕 백운산 정상석 주변에는 큰꿩의비름이 산다.
송신탑 주변이었는데, 수풀이 우거져 도태되었는지 찾을 길 없다.
아쉬운 맘으로 자리를 옮기려다가
열악한 남한산성 성벽에 붙어사는 큰꿩의비름을 생각해 낸다.
해서 주변 바위절벽을 살펴보니 나름 큰 무리가 붙어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더군다나 나이 들면서 우격다짐은 자신의 옅음을 들어내는 것이다.
가을 하늘이 공활하다.